감정 없는 사람, 판단 능력까지 없어진다
- argentum92
- 10월 21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11월 14일

🍀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이성’ 만 강조하는 것에 대해 이의 있소! 하고 싶으신 분
감정의 중요성을 알기에 ‘뇌과학적 근거도 있다!’라고 말하고 싶으신 분
‘이게 이성적인 결정이 맞아…?’싶은 순간순간의 답답함에 마침표를 찍고 싶으셨던 분
‘회사에 일하러 왔지? 감정 없이 심플하게 가자.’ 라는 말에 반박하고 싶으신 분
‘이성적으로 결정해라.’
‘합리적으로 판단하라.’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마라.’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지겹도록 듣는 말들입니다.
사실 너무도 당연한 명제죠.
조직의 자원을 투입해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직장생활인데, 이성적 사고가 없으면 안 될 테니까요. 덕분에 이성보다 감정을 먼저 타고난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 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가만히 보면 '이토록 열심히 쌓아올린 가치'는 이성적으로 매겨지지 않는 거 같거든요.
회사에 대한 전체적인 가치가 평가되는 곳, 주식시장을 볼까요.
- 투자는 심리 게임이다
(앙드레 코스톨라니)*
- 우리는 이득보다 손실을 훨씬 아프게 느낀다.
(행동경제학)**
- Fearful when others are greedy, greedy when others are fearful. (남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져라) (워렌 버핏) * '유럽의 워렌 버핏'이라 불리는 헝가리의 전설적인 투자자 ** 고전주의 경제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20세기 후반 부상한 새로운 경제학파 이렇게 놓고 보니 참 신기합니다.
개인은 감정 없이 살 수 없는데 조직에서는 이성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라 합니다.
그런데 거시경제는 다시 감정의 파도에서 표류하고 있는, 거대한 뫼비우스의 띠가 완성되는 이 상황.
이성과 감정은 대체 어떤 관계인 걸까요?
정말로 감정은 이성의 통제가 필요한 존재이며, 이성만이 인류 지성의 최고봉인 것일까요?
오늘은 한 환자의 실화를 통해 그 답을 쫓아가 보려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잃었다. 1980년대 미국, 신경과 의사 다마지오Damasio에게 중년의 남성 환자가 찾아옵니다. 그의 이름은 엘리엇 Elliot. 뇌 속에서 작은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은 케이스였죠. 종양이 발견되었던 위치는 뇌 안쪽. 다행히 수술 전 검사 결과는 희망적이었습니다. - 수술이 가능한 크기에, - 생명에 위협이 가지도 않을 거라 여겨졌고, - 예후 역시도 긍정적일 거라고요. 그러나 수술 뒤, 환자의 삶은 180도 달라지게 됩니다. - 직장에서는 쫓겨났고 - 배우자에게는 이혼당했으며 - 이후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여생을 보내는 삶으로. 평판 좋은 이웃이자 직장인, 가장에서 수술 한 번으로 요주의 환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 지적 손상? - 언어 장애? - 기억 상실? - 종양 제거 실패 등의 의료사고? 놀랍게도 전부 아니었습니다. 엘리엇 씨의 IQ는 수술 전후로 변화가 없었고, 주치의와도 장기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으며, 기억에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거든요. 문제는 하나였습니다. ‘사람은 똑같은데, 판단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돌아왔다.’
선생님, 결정을 못 하겠습니다. ‘지적 능력은 똑같은데, 의사결정을 못 한다고?’ 얼핏 보면 이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공개된 기록들은 이 묘사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말해 줍니다. #1) 환자 본인이 가족과의 외식 장소 예약을 맡음 - 예산에 맞는 건 A식당인데… - 가까운 건 B식당이고… - 메뉴는 C가 더 나아… - 주차는 D가 최고네…? - 내부 인테리어는 E레스토랑이야? - 잠깐만, 일기예보 보니까 X요일이 날씨가 최고라고 했었는데? - 아니지 아니지, 선약까지 고려하면 X요일은 내가 너무 피로할 수 있어. N요일은 어떨까? - 어라 잠시만. N요일은 또 사람들로 너무 붐비지 않으려나…? 등등… 무수히 많은 조건들 속에서 ‘정작 결정은 내리지 못하는’ 굴레에 갇혔던 것입니다. 업무적인 상황에서도 이 굴레는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2) 직장에서 필요한 내용을 일단 메모해야 함 - 빨간펜으로 쓸까? - 파란펜으로 쓸까? - 어떤 색으로 쓰는 게 ‘가장’ 좋지? - 무슨 색이 최고지? 이렇듯 기본적인 의사결정조차 힘들어했고, 자연히 모든 것이 어려웠던 수술 이후의 엘리엇 씨. 주변에서 견디지 못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감정이 있어 선호가 있고, 선호가 있어 경중이 있다. 그리고 이 경중 덕에 판단이 세워진다. 여기까지 오면 이런 의문이 생기실 겁니다. Q) 지적 능력에 문제가 없다면, 대체 무엇이 그를 이리 만든 것인가? -> A) 감정을 잃은 것에 대한 연쇄작용이었다. 엘리엇 씨의 주치의, 다마지오가 내렸던 결론입니다. 다시 한 번 이 환자의 기록을 들여다볼까요. ‘그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고, 무슨 종류의 세상일이든 완전한 남의 일인 듯 초연한 모습이었다. 슬픔도, 초조함도, 공포도 없는 듯 보인다.’ ‘불타는 집, 총기, 절단된 몸, 이성의 사진… 다양한 이미지 앞에서도 감정의 변화를 읽을 수 없었다.’ 감정을 잃었던 엘리엇 씨는 역설적으로 어떤 선택지라도 ‘그게 그거’ 였던 것입니다. 전부 다 똑같은 옵션이었기에 (너무도 당연하지만) 무엇이 주어지든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이죠. 결국 감정 없는 이성은, 공허한 반쪽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뇌에서부터 연결되어 있던 두 근원 그렇다면 엘리엇 씨의 뇌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다마지오는 저서 <데카르트의 오류 Descartes’ Error>에서 안와전두엽Orbitofrontal Cortex을 그 요인으로 지목합니다. 수술 당시 종양이 꽤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어 결국 상당한 정도의 뇌 절제가 이루어졌는데, 그 때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연구 결과, 이곳은 뇌의 감정을 이성(결정 및 판단)과 연결하는 부위였습니다. 즉 이성이 담당하는 ‘합리적 판단과 의사결정’은 감정의 활성화에 의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안와전두엽의 MRI 이미지, 출처 구글 결국 뇌종양의 위치와 그로 인한 불운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한 개인에게는 삶이 송두리째 뒤집히게 되는 시발점으로, 뇌과학사에서는 서구 지성사의 ‘합리주의*’에 균열을 내는 충격으로. *플라톤 이래로 서구 문명은 ‘감정=이성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요소’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감정이 있어 이성이 있다 이성, 물론 필요합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결정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니까요. 그러나 이 ‘결정’ 과 ‘판단’을 위해 수많은 정보를 취합하고 거르는, 저 깊은 근원에는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취하고 버릴지, 우선순위를 어떻게 잡아나가야 할지, 그 뒤의 일 배분은 어떻게 할 지 등등… 너무도 당연했던 이 ‘암묵적 합의’의 획 하나하나에는 감정이라는 물감이 배어 있었던 것이죠. 감정은 통제당해야 하는 요소가 아니라, 인류 지성을 뒷받침하는 근원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해 왔던 감정과 이성. 또한 인간이기에 그간 당연히 느껴 왔을 여러 감정들. 결국 조직의 모두는 매 순간 감정과 함께 판단하고 결정해 왔음을 의미합니다. ‘감정 없이 일만 심플하게’ 는 애초에 불가능한 주문이었던 거죠. 그럼에도 인류 지성사에서 '필요없다', '이성에 방해만 된다'라고 무시당해 온 감정. 그럼에도 꿋꿋이 나라는 사람과, 날 때부터 함께해 온 나의 감정.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동안의 마음에게, 수고해 온 나에게 ‘그럴 수 있어’라는 한 마디 건네 주시는 건 어떨까요? 열심히 달려온 나와, 최선을 다해 나를 떠받쳐 주었을 나의 지성을 위해.
참고문헌:
How Only Using Logic Destroyed A Man
Emotion Is Not The Enemy of Reas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