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과 이상
- argentum92
- 4월 24일
- 3분 분량

'평균=이상적 인간? 평범한 인간?'
‘평균보다 위이다, 혹은 아래이다.’
이 말은 어떤 가치를 품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중간보다 높거나 낮은 정도이다’라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걸까요?
이번 아티클에서는 평균에 사회적인 의미가 더해지기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따라가 보려 합니다.
평균을 재면 이상적인 인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편에서 보셨듯 이 경우 결국 허상만이 남습니다
최초로 인간에게 평균을 적용한 사람은 교육학자도, 심리학자도 아니었습니다.
벨기에의 젊은 천문학자, 아돌프 케틀레Adolf Quetelete였죠.
‘천체의 움직임을 측정하던 방법을 사회에 그대로 도입하자.
그리하여 이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 숨겨진 패턴을 찾아내자.’
라는, 어찌 보면 무모하기까지 한 생각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케틀러 시대의 벨기에는 혁명이 한창이었습니다. 덕분에 왕립 천문대장으로 임명되자마자 그 미래가 불투명해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케틀러가 도입한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반복 측정 후 평균값 내기.*
천문학의 방식을 인간 사회에 그대로 도입했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천문학자들은 별의 속도를 측정할 때, 각자의 관찰치를 한데 모은 평균값을 채택했습니다.
어차피 당대의 기술력으로는 정확히 재는 것이 불가능했으니까요.
기록이 누적되면 오차는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 속에 채택된 방법이었습니다.
그 믿음 속에서 케틀레는 닥치는 대로 사회를 수치화했습니다.
평균 키, 평균 체중, 평균 범죄 발생 건수부터 평균 얼굴빛까지...
문제는 그 끝에 내려진 결론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평균인 사람을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그를 벗어나면 오류인 것으로 간주했거든요.
“평균적 인간의 비율, 몸 상태 및 다른 모든 측면은 무조건 기형과 질병에 연관될 수 있다. 이상치로 간주된 비율이나 형태와 비슷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측된 한계를 초과하는 모든 것은 기형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Everything differing from his proportions or condition, would constitute deformity and disease ; everything found dissimilar, not only as regarded proportion and form, but as exceeding the observed limits, would constitute a monstrosity.
-케틀레의 저서 Treatise 中

즉 개개인의 데이터를 통해 얻은 ‘평균의 인간’ 만이 인간의 ‘표준’이며, 가장 이상적인 인간이라는 뜻이었습니다. 평균에서 벗어나는 모든 오차들은 오류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죠.
그리하여 설정된 이 ‘표준’은 알 수 없는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사람은 여기가 틀린 거구나, 저 사람은 저 부분이 어긋난 거구나…
덕분에 케틀러의 사상은 당대 지식인들의 칭송을 받았고, 전 유럽을 휩쓸게 됩니다.
타인을 정형화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욕망을 건드린 결과였습니다.
표준화가 먼저, 인간은 그 다음
사상이 완성되니 경영에 적용되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의 미국.
한참 ‘평균’의 바람이 불던 유럽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온 젊은 사장이 있었습니다.
막 가업인 철강 공장을 이어받아 경영 일선에 나선 참이었죠.
신임 사장의 경영원칙은 확고했습니다.
-모든 작업 공정별로 평균 시간을 구한다.
-그 평균 시간에 맞게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최적화한다.*
-최적화가 끝난 공장은 관리만을 위해 채용한 ‘별도의 직군’에게 맡긴다. 더 나은 효율화를 위해서.** *이를 위해 삽질 한 번에 떠넣는 석탄의 무게까지 정할 정도였습니다
**이후 기획실이 등장하고 능률 향상 전문가, 시간 연구 직원 등이 채용되어 공정 표준을 마련하게 됩니다
즉, 아래와 같은 흐름을 확립한 것입니다.
업무의 표준화
기획/현장의 철저한 분리
개개인성의 말살
이후 이 경영방식은 미국 전체, 더 나아가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고등교육도 이에 맞게 개편되었죠.
20세기의 소련에서조차 거리낌 없이 적용될 정도였으니 그 파급력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경영사에 한 획을 그은 이 인물은 프레데릭 윈슬로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
훗날 테일러의 아들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도시바의 임원들은 그에게 ‘아버지의 손길이 닿은 어떤 물건이든’ 간청했다고 전해집니다.
평균을 통해 우열을 가릴 수 있을 것이다.
‘평균보다 나아야 한다’라며 마음을 졸이는 분위기 역시 이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당대의 엘리트였던 골상학자 프랜시스 골턴.*
골턴은 케틀러의 ‘이상적인 인간’ 개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평균에서 벗어난 인간은 오히려 크게 우월한 인간이며,
그토록 뛰어난 사람들은 다른 방면에서도 엄청난 실력자라는 이론을 더합니다.
(반대로 평균에서 뒤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열등하다’라고 보았습니다.)
*찰스 다윈의 친척으로도 유명한 그 골턴 맞습니다.
“영국의 판사, 주교, 정치인, 진보의 선도자가 된 이들이 전성기 때 뭉쳤다면 막강한 운동 팀이 탄생했을 것이다.” The youths who became judges, bishops, statesman, and leaders of progress in England could have furnished formidable athletic teams in their times.
-골턴의 저서 Essays in Eugenics 中
사실상 오늘날의 우리가 ‘평균보다 위이다’, 혹은 ‘평균보다 아래이다’ 라는 말에 일희일비 하는 것도 골턴의 공(?)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최초의 표준화는 ‘이상적인 인간을 찾는다’라는 미명 하에 탄생한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물결은 ‘공장 기계에 맞게 인간을 표준화한다’로 주객전도가 되었고, 전 사회에 걸쳐 적용되는 한편 우열을 가리는 수단으로까지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가진 ‘표준화’ 체계.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2025년에는 잘 맞는 시스템일까요?
끊임없이 우열을 가려야 하고, 와중에 표준화를 거쳐 ‘모두에게’ 강요되어야 하는 체계는 현대의 조직 문화에서도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블루밍고는 구성원이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조직을 꿈꾸며, 그 길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이들이 모인 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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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저, 정미나 번역/이우일 감수, 21세기북스
Quetelet, Adolphe. A Treatise on Man and the Development of His Faculties. Translated by Robert Knox. Edinburgh: William and Robert Chambers, 1842.
Galton, Francis. Essays in Eugenics. London: Eugenics Education Society, 1909.